테마10선 평화역사이야기
인천강화 문화관광


풍년의 바람을 노래하다


강화용두레질소리

개요

강화용두레질소리는 풍년을 구가하며 작업능률을 올리고 권태와 피로를 덜기 위하여 악기를 치며 노래를 부른데서 시작되었다. 농부들이 농번기철에 윗동네와 아랫동네로 편을 갈라 모찌기, 모심기, 두렁밟기, 김매기, 물푸기 등의 영농 과정을 경쟁적 협력관계로 설정하여 가락에 율동에 담아 집단적으로 가무를 즐겼다. 강화용두레질소리는 영농작업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훌륭한 전통문화유산이다.

해설사

스토리

용두레질소리는 통나무를 길쭉하게 파서 만든 용두레의 한 끝을 쥐고 밀어서 낮은 곳의 물을 높은 곳으로 퍼 올리면서 부르는 소리로 강화도에서 논농사에 관련되어 전승되는 여러 가지 전통 문화를 묶어 재현한 것이다. 풍년을 구가 하며 작업능률을 올리고 권태와 피로를 덜기 위하여 악기를 치며 노래를 부른 데서 시작되었다.

강화용두레질소리의 농요는 물푸는노래 용두레질 를 중심으로 모찌는 노래, 모심는 노래, 김매는 노래가 있으며, 농악으로 열두가락파접농악이 함께 전승되고 있다.

강화도는 섬이지만 적극적인 간척 사업으로 전체 면적의 3/4이 농지로 이루어져 있고 그만큼 농업의 비중이 높다. 하지만 산이 낮고 물이 귀해 논농사에서 물을 관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강화도에서 용두레질소리가 발달할 수있었던 이유다.

물을 퍼 올리는 단순하고 반복되는 노동 과정에서 부르는 용두레질소리는 보통 “하나 둘이다 허이, 둘은 서이” 또는 “하나의 둘이라 흥, 둘이면 서히요 흥” 등 숫자를 헤아리는 셈소리로 부른다. 셈소리로 부르다가 중간 중간에 “열다 섯에 시집을 갔드니”, “논배미루다 물 넘어 간다” 등의 노랫말을 끼워 넣기도 한다.

또한 강화용두레질소리는 셈소리로 부르는 교동면의 용두레질소리와 달거리로 부르는 강화읍과 내가면의 용두레질소리로 나뉜다. 교동면에서 조사된 용두레질소리는 숫자를 헤아리는 단순한 셈소리인데 반해 강화읍과 내가면의 용두레질소리는 열두 달의 계절적 풍광을 차례대로 읊는 달거리의 형태의 세련된 면모를 갖추고 있어 주목 받는다.

한편 용두레질소리의 본공연은 양촌마을, 음촌마을로 편가르기, 모찌기, 모심 기, 새참놀이, 김매기, 두렁밟기, 물푸기, 열두가락파접농악놀이의 8마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에피소드

인천시 강화군 내가면의 용두레질소리는 1986년 제27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고, 2003년 10월 27일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2009년 8 월10일 문화재명칭변경에 의해 강화용두레질노래에서 강화용두레질소리로 바뀌면서 열두가락농 악이 추가되었다.


물들인 왕골로 꽃무늬를 놓다


화문석 /화문석문화관

개요

화문석은 물들인 왕골을 손으로 덧겹쳐가며 엮은 다음, 무늬에 따라 잘라낸 꽃돗자리다. 강화를 대표하는 특산물인 화문석을 널리 알리기 위해 송해면 양오리에 세워진 화문석문화관을 방문하면 화문석을 비롯해 다양한 왕골공예품의 변천 과정을 살펴 볼 수 있다. 화문석문화관 1층에서는 왕골공예 체험의 기회를 마련하고 있는데, 사전에 전화로 신청하면 왕골공예인들과 함께 미니화 문석과 왕골소품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

해설사

스토리

화문석은 여름철에 마루에 깔고 그 위에 눕거나 앉으면 더위를 덜 수 있어서 널리 애용되었으며 무늬 또한 아름다워 집 치장에도 한몫을 담당하였다. 더구나 좌식생활(坐式生活)을 해왔던 우리나라에서 화문석은 빼놓을 수 없는 살림살이의 하나였으며, 이것이 일찍부터 중요 공산품으로 손꼽혀왔던 것도 그 때문이다.

신라시대에 이미 화문석의 생산을 담당하였던 관청이 있었다. <삼국사기> 직관조(職官條)에 석전(席典)으로 불리던 부서가 경덕왕 때 봉좌국(奉坐局)으로 바뀌었으며 뒤에 다시 석전으로 개칭되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 두 가지 이름으로 미루어, 이들이 자리류의 생산을 담당하였던 관청이었으리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자리류의 생산을 국가기관에서 담당하여야 할 만큼 이에 대한 수요가 높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또, 같은 책에 육두품(六頭品)이하의 벼슬아 치도 수레 앞뒤에 휘장 삼아 ‘완석(莞席)’을 늘였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이것을 화문석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화문석

에피소드

고려에 들어와 화문석은 외국에까지 널리 알려졌으며 인삼과 더불어 중요한 수출품 내지 선사품이 되었다. 고려초에 요나라에 보낸 특산품 가운데 용무늬를 넣은 화문석(龍鬚草地席)이 들어 있으며, 송나라 사람들도 고려의 화문석을 매우 탐내었다고 한다.

화문석문화관 찾아가기

주 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송해면 장정양오길 413

전화번호 032-930-7060

이용시간 09:00~18:00(동절기09:00~17:00) 신정, 명절 휴관

이용요금 어른 1,000원 / 청소년, 군인 700원 / 어린이 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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