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10선 평화역사이야기
인천강화 문화관광


사찰로서 가장 오래도록 남다


전등사

개요

현존하는 사찰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녔다. 진나라에서 온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하면서 지금의 전등사 자리에 절을 짓고 진종사라는 이름을 붙였 다고 한다. 전등사에는 보물 제178호 대웅보전, 보물 제179호 약사전, 보물 제393호 범종, 보물 제1785호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등이 있고 경내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정족산 사고가 있다. 전등사 일대를 에워싸는 삼랑성은 국가사적 제130호로 지정되었다.

해설사

스토리

전등사는 삼랑성이라고 하는 정족산성 안에 있다. 소수림왕 11년 381 에 아도화 상이 창건하여 진종사라는 이름으로 건축되었다. 그 후 1282년 고려 충렬왕의 비 정화궁주가 승려 인기를 중국 송나라에 보내 대장경을 가져오게 했고, 대장경과 함께 옥등을 진종사에 시주한 뒤로 ‘등을 전했다’하여 전등사로 부르게 되었다.

전등사는 고려시대에 궁궐의 기능을 하기도 했다. 몽골군의 침략을 받은 고려 왕실에서 1232년 강화도로 임시 도읍지를 정하고 궁궐을 옮긴 적이 있기 때문 이다. 그래서 지금도 전등사에는 궁궐이 있던 자리인 가궐지가 남아 있다. ‘가 궐’은 가짜 궁궐이란 뜻이지만, 왕이 가끔 와서 실제로 묵기도 했다. 가궐지에는 수십 개의 가짜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풍수도참가 백승현이 건의해서 고려 고종이 건립했던 가궐에는 왕이 기거하지 않았음에도 금침을 깔아 실제 왕이 잠을 자며 기거하고 있는 것처럼 꾸며 두는 관습이 있었다.

전등사는 다른 사찰과 달리 일주문이 없는 게 특징이다. 전등사에 가려면 정족산성의 남문이나 동문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이것이 일주문의 역할을 한 것이다. 그 후 조선 영조 1739 때 강화유수 권교가 남쪽에 문루를 지어 종해루라 했지만, 세월에 의해 무너진 것을 1976년 복원했다.

전등사의 대조루는 밖에서 들어갈 때 보면 2층이지만 대웅보전 마당에서 보면 1층으로 보이는 특이한 구조이다. 대조루란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는 망루’라는 뜻으로 대조루의 창문을 열면 전등사 남동쪽으로 강화해협이 한눈에 펼쳐진다.

대조루를 지나면 전등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인 대웅보전이 있다. 대웅보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의 아담한 크기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 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에 기둥은 배흘림기둥이다. 대웅보전 처마 밑에는 나부상이 있다.

네 귀퉁이 처마 밑에서 옷을 벗은 채로 쭈그리고 앉아 지붕을 받치고 있는 나부상은 다른 절에서 볼 수 없는 전등사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대웅보전 안에는 나무를 깎아 만든 석가여래 삼존불이 있다.

전등사

에피소드

전등사에서 놓치지 않고 봐야 할 것이 철제 범종이다. 1963년에 보물 제393호로 지정된 범종은 중국에서 만든 것이다. 종의 밑 부분에는 중국 하남성 백암산 숭명사의 종이라는 점과 북송의 철종 소성 4년에 만들어졌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즉, 고려 숙종 2년 1097 이다. 이 종은 일제강점기 하에서 일제의 금속류 강제수탈 과정에서 중국에서 인천으로 건너온 것으로 추정된다. 광복 후 부평 미군기지에서 발견된 것을 신앙심이 높은 불교신도에 의하여 전등사로 옮겨져 현재까지 보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등사 찾아가기

주 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로 37-41

전화번호 032-937-0125

이용시간 07:30~18:30

이용요금 어른 3,000원 / 청소년 2,000원 / 어린이 1,000원


개화기 주요 격전이 벌어지다


초지진

개요

사적 제225호로 지정된 초지진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효종 7년 1656 에 구축된 요새이다. 성곽 둘레가 500m도 되지 않는 작은 규모이지만, 프랑스 함대가 침범한 병인양요 1966년 , 미국 아시아함대가 쳐들어온 신미양요 1871년 , 일본 운요호의 불법침입 사건으로 인한 운요호사건 1875년 등 개화기의 주요 사건 때마다 전투를 벌인 격전지이다.

해설사

스토리

김포시 대명리와 초지대교 사이의 강화해협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초지진은 1871년 신미양요 당시 미군이 처음 상륙한 장소이다. 초지진의 ‘진’은 나루 ‘진 津 ’이 아니라 막을 ‘진 鎭 ’으로, 즉 초지진은 배들이 들고나는 나루터가 아니라 적의 공격을 막는 군사 요새를 뜻한다.

효종 7년 1656 에 구축된 초지진에는 초지돈, 장자평돈, 섬암돈 3개 돈대가 속해 있었다. 이때 9개의 포대도 만들어졌는데, 초지진 남쪽의 진남포대에는 대포 12문이 설치되었다. 초지진 앞 황산포대에도 대포 6문이 설치되어 적과 싸울수 있도록 했다.

초지진은 신미양요를 일으킨 미군뿐 아니라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 운요호 사건을 일으킨 일본군과도 격전을 벌인 장소이다. 초지진 앞 소나무에는 지금도 포탄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어 당시의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초지진에 설치된 안내판엔 ‘고종 3년 1866년 10월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침입한 프랑스군 로즈 극동함대 및 고종 8년 1871년 4월에 통상을 강요하며 내침한 미국 로저스 아세아 함대, 고종 12년 1875년 8월 침공한 일본 군함 운요호와의 치열한 격전을 벌인 격전지다’라는 표현이 있다.

1866년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평양 근처에서 교역을 거절당 하자 총과 포를 난사하는 등 횡포를 부리다가 분노한 평양의 군민 들에 의해 배가 불타고 선원 모두 죽임을 당했다. 이 때문에 미군은 군대를 파견했다. 겉으로는 뱃길을 탐사하고 무역을 요구했지만 실은 조선의 개항이 목적이었다. 미군은 650명의 병력과 신식 무기를 내세워 초지진을 함락시켰다. 이 사건을 ‘신미양요’라고 부른다. 그리고 덕진진을 점령하여 군사 시설을 불태우고 광성보로 쳐들어간 것이다.

또 미국에 의해 억지로 개항했던 일본이 1875년 운요호 사건을 일으켰다. 조선 정부는 결국 1876년에 강화도 조약을 체결했다. 운요호 사건 때 일본군이 패퇴하며 초지진을 허물었고, 초지돈대만 남았다. 성곽의 둘레는 500m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작은 규모이지만 적군의 침략을 막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수많은 전투를 치르다 보니 성곽이 완전히 소실되어 없어졌다가 1976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에피소드

돈 안에는 조선말의 대포 1문이 포각 속에 전시되어 있다. 일제시대 때 일본 모 고관이 뜯어다 자기 별장에 기둥 밑받침으로 쓴 것을 해방 직후 수도경찰청장과 국무총리를 역임했던 장택상 씨가 집의 현관 기둥으로 보관하였다. 나중에 그의 아들이 초지진 복원 소식을 듣고 기증하게 돼 오늘 까지 남게 된 유서 깊은 유물이다.

초지진 찾아가기

주 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해안동로 58

전화번호 032-930-7072

이용시간 09:00~18:00

이용요금 어른 700원 / 청소년·군인 500원 / 어린이 500원


하늘의 역사가 시작되다


마니산 참성단

개요

마니산 정상에는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쌓았다고 전해지는 참성 단이 있다. 참성단을 만든 시기와 본래의 모습은 정확히 추정할 수 없지만, 단군이 제단을 쌓은 곳이기에 적어도 4,000년이 넘는 유적임을 알 수 있다. 참성단은 자연석을 다듬어 제단을 쌓았는데 둥근 기단 위에 네모 모양으로 만들 어진 제단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라는 천원지방의 세계관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해설사

스토리

마니산 참성단은 사적 제136호로 크기는 면적 5,593m 2 , 상단방형 1변 길이 1.98m, 하단원형 지름 4.5m이다. 마니산은 본래 고가도라는 섬이었다고 하는데 이곳에는 외적을 막기 위해 군병을 두둔시켰으며 삼랑성 三郞城 이 쌓여진 것도 이런 연유에서였다고 한다. 1437년에는 역관 曆官 을 파견하여 측우기를 설치하기도 하였다. 마니산 바로 앞바다 강화만 江華灣 은 세계에서 간만 干滿 의 차가 가장 심한 곳으로 온 바다 조수 潮水 의 기점이라고 하는 대자연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곳이다.

멀리서 보면 당당한 독립산을 이루고 있는 마니산은 마니 단풍이라고 할 만큼 산세가 아름답고 가을 단풍의 풍치가 빼어나 강화 팔경의 하나로 꼽는다. 마니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정상까지 918개의 계단으로 이어진다.

이 마니산 정상에 있는 참성단은 대한민국 내의 유일한 단군유적이다. 그 사실의 실제 여부를 떠나 적어도 1,000년 가까이 마니산은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제단으로 우리 의식 속에 들어와 있다.

땅을 상징하는 네모난 제단과 하늘을 상징하는 원형의 광장으로 조성된 참성 단은 제사를 지내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천, 지, 인 삼재가 한자리에 구현된 조형 양식이다. 이는 ‘홍익인간’의 이념을 잘 표현한 자리라 할 수 있겠다.

참성단을 조성한 연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보수 또는 수축한 기록이 곳곳에 있다. 고려 원종 11년 1270년 , 조선 인조 17년 1639년 , 숙종 43년 1717년에 단을 보수한 기록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이곳 참성단에서 제천의식이 행하 여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한편 전국 체육대회 때마다 대회장에 타오르는 성화는 이 참성단에서 7선녀에 의해 채화되어 대회장으로 점화 봉송되고 있다. 특히 88서울장애자 올림픽대회의 성화도 이곳에서 채화되어 대회기간을 밝힌바 있으며 해마다 개천절에는 단군에게 지내는 제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마니산

참성단

에피소드

참성단을 바라보면 오른쪽 축대 위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돌로 쌓은 축대를 땅으로 여기고 자란 소사나무다. 수고 4.8m, 밑동둘레 2.74m의 소사나무는 여러 개로 갈라진 줄기에 나무갓 모양이 단정하고 균형이 잡혔으며, 참성단 위에 홀로 서 있어 더욱 돋보인다. 수령은 150년 정도로 추정된다. 역사적 유적지인 참성단과 함께 지내온 세월과 독특하게 돌 틈에서 자라나는 이 신기한 나무는 2009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마니산 참성단 찾아가기

주 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마니산로 657번길 18

전화번호 032-930-7068~9

이용시간 09:00~18:00

이용요금 어른 2,000원 / 청소년·군인 1,000원 / 어린이 7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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